낙찰의 기쁨과 함께 튼실해지는 와인 포트폴리오
서양에서는, 의심할 여지 없이, 주식시장이 약해지면 와인이 투자의 대안으로 간주된다. 와인 투자자들은 블루칩 와인을 구하려고 경매장으로 달려간다. 보르도, 버건디, 론, 바롤로, 바바레스코, 호주 쉬라즈, 캘리포니아 카베르네 등을 하나씩 갖추는 동안 투자자의 저장고는 튼튼해지고, 투자 포트폴리오는 짜임새를 더해 간다.
와인시장 역시 요즘의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양질의 상품 가격은 계속해서 상승하고, 그렇지 않은 상품 가격은 약세를 면치 못하는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와인경매의 주연급 고급와인의 가격은 더 비싸지는 반면에 조연급 와인들의 가격은 살 만한 수준으로 거래되는 것이 보통이다. 부르고뉴의 와인 이를 테면 도멘느 로마네 콩티 혹은 드 보그가 양조한 와인의 값은 천청부지로 뛰어 오르는데 반해 비교적 덜 알려진 생산자의 와인은 품질에 비해서 싸게 거래되고 있다.
그렇다면 와인 경매는 주로 어디서 이루어지는가? 와인 경매는 일찍이 보르도 와인을 클라레라고 칭하며 그 가치를 인식한 영국 사람들을 위해 런던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당시의 보르도 와인은 요즘처럼 진한 색이 아니라 말 그래도 투명한 와인이었다.) 그러나 유럽 경기 둔화와 미국 경제력 상승으로 인해 점차 와인 경매의 중심축은 미국으로 옮겨 가고 있다. 경매 시장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소더비의 와인 경매 실적을 살펴보면 위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소더비는 2002년에 약 3천만 불 (36억원)의 낙찰결과를 거두었는데, 미국에서 전년 대비 16% 증가한 2천만 불, 영국에서는 26% 감소한 1천만 불의 낙찰을 이루었다. 출품 단위당 평균 낙찰가격의 변화를 보면 미국 시장의 구매력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평균 낙찰가격은 2001년 대비 58% 상승한 2천 5백 불인데 비해, 영국은 17% 감소한 1천 3백 불을 기록하였다.
와인 경매가 활성화되고 있는 미국에서는 과연 누가 경매에 참가하는가? 2002년도 소더비 자료에 의거하여 낙찰자의 출신지역 분포를 살펴보면 미국 50%, 아시아 42%, 남미 5%, 유럽 3% 순이다. 여기서 아시아출신 낙찰자의 42% 라는 숫자는 주목할 만하다. 주로 일본, 홍콩, 싱가포르 애호가들의 열성이 담긴 결과이다. 한편 남미 결과의 상당한 부분은 브라질이 차지한다. 최하위를 차지한 유럽은 자체 경매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왜 미국이 절반밖에 차지하지 않느냐며 미국시장의 와인경매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 소더비 관계자는 2위 낙찰자의 대부분이 미국인들이라며 향후 와인경매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와인 경매의 주인공은 어떤 와인인가? 그것은 보르도 와인, 특히 보르도 레드 와인이다. 와인 거래의 주요 품목이며 와인 투자가의 블루칩인 보르도 레드 와인은 뛰어난 품질과 숙성 가능성 그리고 많은 생산량 등으로 인해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경매에서 거래되는 보르도 와인 가격은 빈티지에 따라 좀 다른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우선 1995년, 1996년과 같은 최근 빈티지는 가격변동의 폭이 10-15%로 좁은데 비해, 1986년, 1989년, 1990년과 같은 어느 정도 숙성된 빈티지는 가격 변동의 폭이 30-50%로 좀 더 넓어진다.
1982년 혹은 1961년 빈티지인 경우는 그 변동폭이 더 넓어진다. 그 이유로는 경매 출품 빈도수 혹은 직전 경매의 결과 등을 들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보관상태와 소장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페트뤼스 1982년 산이 출품되었다고 하자. 보통 경매에서 4천 불을 호가하는 이 와인은 20세기 대표와인중의 하나인 보석과 같은 와인이다. 하지만 낙찰가격은 출품자가 누구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출품자가 샤또 자체인 경우와 어떤 무명의 와인애호가로 구분해 보면 그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샤또가 직접 출품한 와인은 보관상태가 최적이다. 왜냐하면 이동이나 운반을 한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와인투자자의 사냥감 1호로 오르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무명의 위탁자가 출품한 와인은 일단 보관상태가 의심스러우니 와인 중 한 병을 골라 품질을 시험해야 하며, 샤또가 출품한 경우보다 덜 매력적인 내용으로 카달로그에 기술되게 된다. 결국 낙찰가격의 변동폭은 100%를 넘기기도 한다.
세계의 와인투자자 중에서 벨기에 사람들는 와인의 보관과 관리에 가장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네덜란드어를 구사하는 북부지역이 불어를 구사하는 남부지역보다 더 그렇다. 특히 월드컵 스타 설기현이 한때 몸담았던 엔트워프는 탁월한 와인소장가가 많기로 유명하다. 서양 경매 회사들은 이러한 지역으로부터 출품을 받기 위해 매달 와인 전문가를 파견하여 출품와인 확충에 힘쓴다. 와인 경매 역사에서 벨기에가 중요한데, 그 이유는 바로 벨기에가 한때 보르도 특히 포므롤 와인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입했다는 사실이다. 벨기에는 고급 보르도 와인을 배럴 상태로 수입하여 별도의 병입 과정을 거친 후 재수출을 하기도 했는데, 가끔 경매에 출품되는 오래된 와인의 상당량은 바로 벨기에에서 병입된 와인이다. 그 중에서 반데르 물렌이 가장 유명한 병입 회사 인데, 오래된 샤또 슈발 블랑, 샤또 오존, 페트뤼스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붉은 마개와 상표는 그 트레이드 마크이다. 이러한 와인이 출품되면 많은 투자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입찰에 열을 올리게 된다.
보르도 와인의 하일라이트라고 하면 누가 뭐라 해도 1961년 라투르와 1945년 무통 로쉴드이다. 이 두 와인은 고전적인 빈티지를 대표하는 와인인데, 경매 낙찰 결과를 살펴보면, 와인이 왜 투자수단이 될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98년부터 2002년 까지 4년에 걸쳐 라뚜르는 92% 상승한 병당 평균 3천 3백 불, 무통 로쉴드는 192% 상승한 병당 평균 7천 3백 불에 낙찰되었다. 이 가격은 10년 전에 비해 약 4배가 상승한 것이다. 와인도 투자를 잘만 하면 어떤 금융상품에 못지 않다는 주장을 잘 뒷받침하고 있다. 올 연말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테이블 34’에서 열리는 와인경매에 1961년산 라투르가 출품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투자의 기쁨을 만끽하려면 경매장으로 가야 한다. 경매장에 가면 포도즙 한 방울 한 방울이 금 방울인 고가의 와인부터 일상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일반 와인까지 다양한 와인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1961년, 1982년, 1990년 등의 뛰어난 빈티지의 고급 와인은 좀처럼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에 경매장으로 가야 비로서 여러 와인들을 살 수 있다. 낙찰의 기쁨과 함께 튼실해지는 와인 포트폴리오는 와인 저장고를 채움과 동시에 투자자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든다. 계속적인 주식시장의 침체로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고 있는 투자자들에게 외치고 싶다. 와인시장은 또 하나의 투자 시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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