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rch 26, 2008

진시황



진시황에 대하여:


중국 역사 년도표로부터 볼때 중국 고대는 하,상,주를 거쳐 기원전 259년에 진나라가 세워 졌는데 진시황은 바로 진나라의 황제였으며 중국 고대의 첫황제 이기도 하다.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된 나라를 세웠고 “말은 같은 길로, 책은 같은 문자로”의 국면이 나타났다. 이런 그에 대한 평가에는 지금까지도 많은 논쟁이 있다.
그의 업적을 개괄하면:
1. 문자를 통일하다.이것은 중화민족 탄생의 기초로 되였다.
2. 제후국을 통일하고 군현을 세웠다. 이것은 중국 통일의 표준모식으로 되어서 수천년간 전해져 내려왔다.
3. 화페와 무게단위를 통일하였다. 이것은 고대의 상업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4. “차량은 같은 로정으로 달리고 도로는 같은 너비여야 하며” 서안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었다. 이것은 교통운수의 편리에 큰 도움이 되었다.
5. 분서갱유. 통일을 위하여 진시황은 역사가 남긴 문제로 인해 국가가 분렬되는걸 원하지 않았다.
6. 운하를 만들다. 이로 인해 주강 (珠江)유역에 대한 공제가 가강 되었으며 이지역이 영원히 중국의 영토로 될수 있게 하였다.
7. 장성을 수리하여 농업민족과 유목민족을 선명하게 갈라놓았으며 이것은 중국고대의 국계로 되었다.
8. 북쪽으로 흉노를 물리치여 중국의 영토를 넓히였다.
평가:
진시황은 신이 아니였다. 그는 중국 통일의 큰 꿈을 이루었지만 그와 반면에 많은 과오도 있었다. 하여 그를 평가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 같다.한동안 한사람을 어떻게 평가 할건가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이런 방법의 평가는 어떠한지 모르겠다.
만약 진시황이 없었다고 가정한다면 제후국의 멸망은 그렇게 빠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진시황보다 이욕이 더 강한 왕이 나타날수도 있고 좀 덜한 왕이 나타나서 중국을 통일 하였을수도 있다.
그럼 중국은 지금의 크기였을까? 지리적으로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활동 범위로 봤을때 중국의 영토는 동유럽 혹은 서아시아까지 확장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지금의 양자강과 황하지역의 일부분만 포괄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 문자는? 진나라의 한자로 통일 된것은 당시 진의 강력한 법이였겠지만 역사의 발전과 더불어 한자의 통일은 필연적인 것이였고 민간에서도 바라던 일일것이다. 단지 모양이 다르고 통일된 시간이 다를수 있겠지만…
… …
이처럼 하나하나 풀어나가면 진시황 존재의 진정한 의미는 어디에 있겠는가? 바로 그는 “촉매” 작용이였던 것이다. 중국 역사 발전의 촉매였고 중국 통일의 촉매였다. 그의 존재로 인해 느림보 였던 중국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달리면서 많은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는 공자의 훌륭한 철학사상도 버렸고 우수한 지식인들의 유교사상도 몰살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욕망만 믿었지 황제는 인민이 선택함을 몰랐다. 하긴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새로운 사회에서 그를 설득시킬수 있는 철학가는 한비밖에 없었으니까. 이런 새로운 역사속에서 선인들의 경험이 없는 진시황은 두려웠을지도 모른다.하여 그는 진시황릉묘를 세웠다. 신이 아닌 이상 존재감을 잃는것을 두려워 할수록 더큰 <<장식품>>으로 자신을 표시하려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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